박진철
朴鎭哲1924. 4. 25 ~ 2006. 3.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라비트그룹
- · 성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4월 25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현 신안군) 압해도(押海島) 신장리(新庄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병문(朴炳文)을 사용하였다. 유년시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8살 때 목포(木浦)로 건너와 목포제일보통학교(현 북교초등학교) 6년을 마쳤다. 이후 광주(光州)에 있던 송정공업실수학교(松汀工業實修學校, 현 목포공업고등학교) 공예과에 진학하여 3년 과정을 졸업하였다. 17세 되던 해인 1941년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東京) 소재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專門部) 예술과(藝術科) 예과(豫科)에 입학하였다. 대학 입학 후 일본인의 한국인 차별대우를 몸소 겪으며 민족의식에 눈떴다. 당시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에 다니고 있던 양회종(梁會縱)의 제안으로 ‘라비트 그룹’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라비트’는 토끼(Rabbit)의 일본어 발음으로, “소극적으로 있지 말고, 그저 뛰는 토끼와 같이 활동해야 한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리더 양회종은 일본이 반드시 전쟁에서 패할 것을 확신하고, 적당한 기회를 노려 한국 독립을 이룩하고자 1939년 1월부터 이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양회종은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은 물론 그룹원이었던 고향 후배들에게 공산주의를 비롯한 각종 사상을 선전하고, 반전(反戰)의식을 고취하였다. 또한 국내 광주농학교(光州農學校, 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동맹휴교 관계자와 연락하여 인민전선(人民戰線) 운동 전개를 기도하였다. 양회종과의 만남 이래 매주 수요일마다 독서회를 가장하여 회원들과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 역사 강습과 일본 역사에 대한 비판, 토론 등의 교육활동이 이뤄졌다. 또한 한 주 동안 각 회원이 획득한 동지의 수, 염탐한 일본정세에 대한 보고가 행해졌다. 이밖에 회원들과 함께 피로써 일본의 징병을 거부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는 의식을 진행하여 결속을 다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약 3년여 동안 지속되었다. 1944년 5월 9일 ‘라비트 그룹’ 회의에 참석하여 회명을 성도회(醒道會)로 개칭할 것을 결의하였다. ‘라비트’가 외래어이므로, 우리말로 바꾸어 민족의식을 드높이자는 취지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회명 변경과 동시에 활동 영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회장 양회종을 비롯하여 김강현(金鋼鉉)·백남식(白南植)·김병수(金炳洙)·이강일(李康一)·손호주(孫鎬周)·남미숙(南美淑) 등과 같이 1:1 점조직을 구성하여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회원들은 동포가 경영하는 식당과 기숙사를 돌며 학생과 노동자를 교육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징집 거부에 나설 것을 설득하였다. 일본 주요 기관에 근로 동원된 학생들로부터 군사기밀을 받아 내거나, 직접 공장에 잠입해 이를 습득하기도 하였다. 성도회 회원들은 이렇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일제 공장, 관공서를 파괴할 폭탄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때 미쓰비시(三菱) 군수공장에서 강제 근로 중이었는데, 지역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민족 교육에 나서는 한편 공장 내 총포류 설계도, 일본군의 물자 보급 계획 등 다수의 기밀문서를 반출하여 회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폭탄 제작에 일조하였다. 성도회 회원들과 함께 1944년 9월 12일 일본 헌병대에 붙잡혔다. 헌병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약 3개월 전부터 주요 회원들을 미행했다고 한다. 곧바로 시부야(澁谷)헌병대로 끌려가 59일 동안 잔혹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11월 9일에는 스가모형무소(巢鴨刑務所)로 이감되어 예심에 회부되었다. 이때 가해진 고문과 굶주림의 고통은 헌병대에 비할 바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검찰은 성도회원들이 예심을 4회나 받았음에도, 의도적으로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로써 이들은 기약 없는 수감생활을 지속해야만 하였다. 일제의 부조리함은 풀려난 후에도 이어졌다. 1945년 6월 15일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곧바로 보호 관찰 명목으로 보호소에 수감되었다. 보호소 내 주어진 자유시간은 하루에 2시간 남짓이었다고 하며, 1945년 9월 30일에 가서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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