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순명
房順明187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해산 의병부대
- · 김영백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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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전라남도 창평군(昌平郡) 개평면(開平面) 내동(內洞, 현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 일대)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31세였으므로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방수명(房須明)이라는 이명을 쓰기도 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전해산(全海山) 의병 부대와 김영백(金永伯)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인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07년 9월 전해산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전해산 의병부대는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부대 가운데 하나였다. 1908년 8월 15일 김영백 의병부대로 옮겨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김영백 부대에서 십장(十長)의 역할을 맡아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 (음)9월 동료 의병 40여 명과 함께 전북 흥덕군(興德郡) 일동면(一東面) 조동리(槽洞里, 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황종윤(黃鍾允)에게서 엽전 27냥과 의복·관망(冠網)을 모집하였고, 흥덕군 일동면 칠성리(七星里, 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이병근(李秉瑾)으로부터 엽전 30냥과 의복·반지 등을 징수하였다. 이후 흥덕·고창(高敞)·정읍(井邑)·부안(扶安)·장성(長城)·영광(靈光) 등지에서 활약하던 중에 1909년 7월 29일 흥덕군 일남면(一南面) 임리(林里, 현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09년 9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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