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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일

朴重一

1857. 11. 7 ~ 192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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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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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長興)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장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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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회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57년 11월 7일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장평면(長平面) 녹양리(綠楊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원(珍原)이며, 자는 우삼(友三)이다. 호남의 유력한 무반 가문 출신이다. 14대조 석정(石亭) 박응삼(朴應參)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에 참여하였던 가문 내력에 영향을 받았다. 1907년 양회일(梁會一) 의병부대인 쌍산의소(雙山義所)에 참여하였다. 양회일의 참모가 되어 군량 수송이나 군무(軍務)를 주로 담당하였다. 쌍산의소는 증동(甑洞) 마을을 본거지로 하여 군량을 모으는 한편, 군사훈련을 시행하는 등 항일 전투를 위해 체계적인 준비를 하였다. 1907년 4월 21일 능주(綾州, 현 화순군 능주면)를 시작으로 화순(和順)을 공격하였다. 군아(郡衙)와 주사청(主事廳)·우편소(郵便所)·경무서(警務署) 등이 주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관공서와 일본인 상가 등을 공격하면서 전신주를 파괴하고, 군수품을 획득하거나 공문서를 불태우기도 하였다. 여세를 몰아 동복(同福)을 거쳐 광주(光州)로 향하였다. 그러나 광주로 넘어가는 도마치(圖馬峙)에서 추격해 오던 일본군과 마주쳐 포위 공격을 받아 타격을 입었다. 이때 양회일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붙잡혔으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도마치전투 당시 패색이 짙어지자 칼을 던지며 “만사(萬事)가 모두 하늘의 뜻이니 어찌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고향으로 낙향한 뒤 은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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