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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瑾衡

瑾衡

1894. 4. 9 ~ 197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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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瑾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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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金堤)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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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독립중로선전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894년 4월 9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현 김제시) 공덕면(孔德面) 마현리(馬峴里)에서 태어났다. 서울 무교동(武橋洞)에 거주하면서 여관업을 하였다. 1920년 5월 20일 자신의 집에 찾아온 독립중로연합선전부(獨立中露聯合宣傳部) 선전위원인 김하련(金河鍊)의 권유로 이 단체의 목적과 취지에 찬동하여 가입하였다. 이후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집하기 위해 본적지인 김제로 내려가서 활동하였다. 독립중로연합선전부는 1919년 이동휘(李東輝)가 수장이 되어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랴오허현(遼河縣) 농평리(農坪里)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로 군무국, 재무국, 교통국, 선전위원회 등의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지부(支部) 설치도 계획하여 중국은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톈진(天津)·하얼빈(哈爾濱)·간도(間島), 한국은 서울·평양(平壤)·대구(大邱)·회령(會寧), 일본은 도쿄(東京)로 결정하였다. 북만주의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거점으로 하여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독립사상을 선전하고 총기와 탄약을 구입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고, 간도와 국경 방면의 일본관헌을 습격하기 위한 항일독립전투 단원을 모집하였다. 함북 경흥(慶興) 출신의 김하련은 1919년 12월 농평리를 출발하여 함북 웅기(雄基)로 잠입하였다. 이후 1920년 5월 서울 무교동에서 김하련을 포함한 10여 명과 공모하여 독립사상의 선전 및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기로 하였다. 한편 “조선인은 열국 연맹 국민당(國民黨)과 러시아 사회당, 중국 민주당 및 미국과 독일의 정당 연합 등과도 상호 연락을 하면 확실히 독립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하였다. 김하련이 맡긴 독립중로연합선전부 단원증 50매를 보관하는 한편 형인 이준형(李準衡)에게 자신이 서명한 단원증을 보여주고 가입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웅기경찰서에 발각되었고 이 일로 1920년 10월에 붙잡혔다. 1921년 2월 23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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