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根泳
根泳185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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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57년 서울 청진동(淸進洞) 출신으로 주소는 알 수 없다. 단혜(單鞋, 홑겹 신발) 제조업을 직업으로 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18년 당시 쌀값이 폭등하자 같은 해 8월 조선총독부는 서울의 여러 곳에 구제회(救濟會) 등을 설립하고 쌀을 염가로 판매하는 판매소를 개설하였다. 8월 28일 서울 종로심상소학교(鐘路尋常小學校) 교사 앞 운동장에서도 주민들을 위해 쌀의 염가판매를 시행하였는데, 이때 일본인 150~160명, 한국인 600~700명이 구매하고자 몰려들었다. 그 결과 혼란 예방을 표방한 당국자는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별하여 오전 9시부터 염매권(廉賣權)을 각기 나누어 주었다. 정오 무렵 미곡 판매가 종료되었는데 일본인은 모두 쌀을 구입하였으나, 한국인은 과반수만 구입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민족적 차별에 한국인은 불평을 호소하였으나 그 장소에 있던 조선총독부 순사 고야마 가에몬(小山嘉佑衛門)이 퇴장을 명령하는 한편 있던 순사보 등과 함께 군중을 학교 뒷문 밖으로 몰아내려고 하였다. 이때 같이 온 딸을 데리고 나오려고 문 안으로 들어온 서울 권농동(勸農洞) 야채 상인 김씨 성을 가진 54세 부인의 팔을 밀치고 문밖으로 밀어내어 왼쪽 가슴 부분을 다쳐 잠시 기절한 상태가 되었다. 그녀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군중들은 노기가 일시에 치솟아 “일본인 순사가 조선인 노파를 살해하였다”고 소리치며 문 안으로 몰려 들어가 코야마 순사를 포위하여 욕하고 구타를 가하였고 일부는 출동한 경찰서장과 경찰관들이 있던 교사(校舍)를 향하여 기왓장과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양춘심(梁春心)·조종운(趙鍾雲)·박중연(朴重然)·조금동(趙金東) 등과 함께 군중의 선두에 서서 가지고 있던 표주박으로 맑은 물을 군중에게 살포하여 이들을 교문 안으로 들어가 저항하도록 선동하였으며, 돌로 학교 뒷문을 부수고 교정에 들어가 군중을 이끌었다. 구타와 폭행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야마가 빠져나와 서쪽 교사 2층으로 뛰어 올라갈 때, 수십 명의 선두에 서서 뒤쫓아 계단으로 올라가 소리치며 피신한 순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증원된 순사와 헌병의 제지를 받고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서 1918년 10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도를 지휘한 혐의’로 형법 제106조 제2호를 적용하여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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