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箕弘
箕弘188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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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6)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소양면(所陽面) 해월리(海月里) 출신이다. 1921년 일제의 판결문에 40세로 기재되어 있어, 1881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전라북도 임실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20년 10월경 전북 전주 소재 김성도(金成道)의 자택에서 조기선(趙基善)·고판홍(高判洪)·김성수(金成洙) 등과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다. 임시정부 요원을 표방하고 임실군내(任實郡內)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모집된 군자금 중 일부는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일부는 여비로 삼아 상하이로 건너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때 군자금 모집시 휴대할 권총은 고판홍이 담당하기로 했고, 기부자에게 제공할 영수증은 김성수가 맡기로 하였다. 이후 고판홍은 다시 이선경(李善京)에게 권총 제작을 의뢰하여 모의 권총 2자루를 제작하였다. 김성수는 금융조합의 출금 전표를 구입하였다. 1920년 11월 30일 모든 준비를 마친 동지들과 임실군 청웅면(靑雄面) 옥산리(玉山里) 소재 오태섭(吳泰燮)의 주막집에 모였다. 여기서 임실면 신안리(新安里) 한규석(韓奎錫) 집에 가서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논의하였다. 만일에 대비하여 김성도와 함께 대기하기로 하고, 조기선·고판홍이 한규석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일 오후 4시경 조기선·고판홍이 한규석의 집으로 가서 면회를 요청하였다. 그러자 대리인 한유석(韓兪錫)이 나왔다. 한유석을 데리고 집 앞으로 가서 자신들은 임시정부 요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러 왔다고 밝혔다. 휴대한 모의 권총을 보이며 능력되는 대로 군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유석이 돈을 준비하겠다고 집안으로 들어간 후 다시 나오지 않아서 실패하였다. 같은 해 12월 3일 오후 3시 30분경 조기선·고판홍과 함께 임실군 운암면(雲岩面) 용운리(龍雲里) 이봉욱(李奉昱) 집에 갔다. 역시 자신들이 임시정부 요원이라고 밝히고 군자금의 기부를 요구하였다. 만약 응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고 휴대한 모의 권총을 겨누었다. 이에 이봉욱은 돈 20원과 꿀 1통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이 임실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3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4년 2월 26일 칙령 제10호에 의해 징역 3년 11월 13일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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