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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根成

根成

1884 ~ 194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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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根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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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달성(達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달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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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흠치교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해안면(解顔面) 창사리(槍沙里, 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1년에 나이가 38세로, 188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유성대(柳成大)라는 이명이 있다. 1914년 의생(醫生) 면허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였고, 일찍부터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6인조로 활동하면서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흠치교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후 강일순(姜一淳)을 중심으로 시작된 급진적 성격을 지닌 신종교운동의 하나였다. 강일순 이후에는 차경석(車京石)이 교주(敎主)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흠치교는 종교를 표방해 치성비라고 하는 군자금을 모집하고 다수의 교인 집단을 만들어, “1924년 갑자년(甲子年)을 기하여 국외에서 이미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독립결사단과 호응하여 조선독립운동을 개시할 것”이라며 선전해 자금 모집과 교단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이들이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독특한 조직 구성이 큰 역할을 하였다. 흠치교는 교주 아래로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은 6인조를 두고, 6인조는 다시 각 12인조, 12인조는 각 8인조, 8인조는 각 15인조 등 순서를 통해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또한 각 조직별로 치성비라는 이름으로 6인조는 30원, 12인조는 15원, 8인조는 10원, 15인조는 5원을 거두어 종교 행사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본부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였다. 흠치교 6인조라는 중간 간부 역할을 담당하며, 1920년 7월 집에서 유상준(柳相駿)·서성영(徐成榮) 등으로 12인조를 조직하였다. 9월에는 하부조직으로 유상준의 8인조가 조직되어 참가 규모를 늘려갔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힐 때까지 170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1년 12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4년(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2년 3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922년 5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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