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행섭
元行燮188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안악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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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출신이다. 1911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32세로 되어 있어 188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안악군(安岳郡) 읍면(邑面) 토장동(土場洞)에 거주하면서, 도매상을 운영하였고 안명근(安明根)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서간도로 이주한 안명근은 그곳에서 무관학교를 세우고자, 1910년 11월 전후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 모집을 하고 있었다. 1910년 12월 19일 황해도 안악군 읍내에 위치한 자신의 집을 방문한 안중근(安重根)의 사촌동생 안명근과 한순직(韓淳稷)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날 밤 양성진(楊星鎭)·박형병(朴亨秉)·고봉수(高奉守)·한정교(韓楨敎) 등을 집으로 불러 거사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안명근을 포함하여 이들과 함께 안악 읍내 재산가의 성명과 자산의 규모, 헌병분견소의 위치, 거주 일본인의 인원수 등을 조사하고 기록하였다. 같은 해 12월 20일 안명근과 함께 읍내 양산학교(楊山學校)로 가서 김구(金九)·김홍량(金鴻亮)·도인권(都寅權)·최명식(崔明植)·김익연(金益淵)·김용제(金庸濟) 등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안악 읍내 부호에 대한 운동자금 마련 계획을 협의하고, 동지들과 함께 읍내 자산가 원명락(元明烙) 등을 방문하기로 결정한 후 밤 11시경 교외 남산 습락현(習樂峴)에 집합하기로 약속하고 해산하였다. 그리고 미리 한순직·박형병 등과 함께 읍내 헌병분견소와 그 부근 일본인 가옥의 상황을 정찰하였다. 그 날 밤 11시경 안명근·한순직 등과 함께 권총 등을 휴대하고 교외 남산 습락현으로 가서 김구·김홍량·도인권 등과 합류하였다. 이때 동지들 중에서 안악 읍내의 자산가는 (음)12월에 이르지 않으면 많은 액수의 현금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래서 같은 해 (음)12월 15일 읍내 자산가들을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안명근이 1911년 1월 10일경 붙잡혀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른바 ‘안악사건(安岳事件)’ 혹은 ‘안명근 사건’에 관계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일제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암살하려는 군자금으로 날조하여 서북지방의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사건이었다. 이 일로 1911년 2월 일본 헌병에 붙잡혀 안악헌병소에서 구금·조사를 받던 중 탈출하였다. 같은 해 7월 22일 진남포지방재판소의 궐석재판에서 이른바 강도죄, 강도미수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해외에 머물다가 1916년경 자수하여 경성감옥에 수감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1919년 만세운동이 발발하자 당시 감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고초를 겪었다. 1926년 10월 25일경 가출옥하였다. 한편, 1936년 3월 안악고등보통학교의 설립을 위한 기성회에 3원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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