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기원
方基元1874. 10. 1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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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1874년 10월 10일 평안남도 맹산군(孟山郡) 맹산면(孟山面) 수정리(水晶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자료의 한계로 성장 환경 및 학력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활동 당시 숙박업 및 대서업(代書業)에 종사한 것으로 보아, 일정 수준의 학식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활동한 방승현(方承鉉)이 아들이다. 1920년 7월 14일 맹산청년회(孟山靑年會)가 조직되었을 때 회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며 야학 강습, 신문·잡지 및 도서 강독 등 계몽 활동에 종사하였다. 1921년 3월 동향 사람인 이수문(李守文)의 권유를 받고 입단금(入團金) 1원을 납부한 후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는 1920년 평남 대동군(大同郡)에서 박응률(朴應律)·김봉규(金琫圭) 등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1920년 10월 평남 총무 역을 맡은 김봉규와 평양 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의 교장을 지냈던 조신성(趙信聖)을 중심으로 맹산군과 영원군(寧遠郡)·덕천군(德川郡)에서 활동 근거지를 마련한 이후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장차 독립전쟁을 위한 결사대 모집 등에 힘썼다. 또한 은신처에 총과 폭탄을 반입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 등의 문서를 발간하였으며,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 일제 식민통치기관의 공격 계획도 수립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한 후 맹산군 일대를 순회하며 군자금과 동지 모집 활동에 나섰다. 「독립선언서」와 「유고문(諭告文)」 등의 문서를 배부하는 한편, 안국정(安國鼎)·김봉규의 주도 하에 맹산 군민들과 뜻을 같이하여 일제에 협력하는 맹산군수 전덕룡(田德龍)에게 협박장을 발송하여 그를 퇴직시켰다. 일제는 1921년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 활동을 독려하던 문창선(文昌善) 등을 체포한 이후 한반도 북부의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이때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역시 나병삼(羅炳三)·나신택(羅信澤)이 영원경찰서의 일제 경찰 박의창(朴儀昌)을 처단하고, 박의창이 운반 중이던 덕천우체국의 공금 5,000원을 군자금으로 확보한 일 이후로 일제의 집중추적 대상이 되었다. 이후 1921년 6월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에 대한 일제의 수사망이 확대되면서 맹산면(孟山面) 선유봉(仙遊峰)에 있던 은신처가 발각되었다. 이때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의 주요 회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21년 11월 21일 평양지방법원에서 대한독립을 목적으로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및 결사대 모집행위를 한 것으로 인해 이른바 보안법 및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22년 3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한 이후 맹산군 주민의 계몽과 권익 보호를 위해 일선에서 활동하였으며, 1926년 맹산면민의 대표로 맹산군청의 북창(北倉) 이전을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하였다. 1928년에는 농민 대중의 의식적 각성을 촉진하기 위해 창립된 맹산농우회(孟山農友會)에서 알선부(斡旋部) 이사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지역 유지로서 주민 단체행사와 위생강연회 개최를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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