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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완

朴泰完

188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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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태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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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온성(穩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온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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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함경북도 온성(穩城)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6년 당시 38세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간도 왕칭현(汪淸縣) 안산(鞍山)에서 거주하였다. 1920년 중국 왕칭현 춘화향(春華鄕) 봉오동(鳳梧洞)에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의 단원으로 가입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20년 3월 15일 대한북로독군부 단원 수십 명과 함께 고향인 함북 온성군 유포면(柔浦面) 풍리동(豊利洞)에 들어와 군자금을 모금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날 밤 9시 풍리동 서편 산기슭에 이르러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같은 동네 김주풍(金柱豊)이 일제 경찰에 밀고하러 가는 것을 보고 단원들과 함께 총격을 가해 김주풍의 가슴과 다리에 총상을 입혔다. 그날 밤 김주풍은 총상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처럼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이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및 강도살인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때 예심에서 치안유지법 적용은 한국에서 최초로 적용된 범죄 혐의였다. 그러나 그 뒤 공판에서 치안유지법은 면소되고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강도살인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여 1926년 5월 3일에 징역 2년 3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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