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선
朴泰善1877 ~ 1927. 7.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청양군 화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77년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산정리(山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에서 6일까지 진행된 산정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청양군 화성면 만세운동은 면사무소 증축 공사 현장을 파괴하는 등 격렬하게 전개된 산정리의 만세시위와 이에 영향받아 전개된 농암리(農巖里) 만세시위로 구분된다. 면사무소 소재지인 산정리의 독립 만세 운동은 박공삼(朴公三)과 조남희(趙南熙)가 주도하였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독립 만세시위의 상황을 파악한 이들은 산정리의 만세운동에 대해 논의하여 서로의 일치된 뜻을 확인하고, 1919년 4월 5일 아침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여 만세 운동을 제안하였다. 박공삼과 조남희로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독립 만세 운동의 상황과 그 목적에 대해 듣고, 이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여 조경희(趙景熙) 등 20여 명의 마을 주민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에 동참하였다. 주도자들의 지휘에 따라 태극기 2개를 정자동(亭子洞)에 게양하고, 마을에 있던 큰 종을 울리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4월 5일의 만세시위로 참여자들의 결속을 다지고 기세를 올린 후, 다음날인 4월 6일에는 만세시위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박공삼·조남희 등 전날 시위에 참여한 산정리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증축 공사 중이었던 화성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오전 10시 도착한 면사무소 증축 공사 현장에는 목수 3명과 인부 2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박공삼은 이들에게 “조선은 이미 독립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면사무소의 증축 공사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호통치며 물러나도록 압박하였다. 공사 현장의 목수들과 인부들이 물러나자, 현장을 습격하였다. 만세시위대와 함께 건물을 완전히 파괴한 뒤 면소재지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다른 주민들에게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만세시위의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18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