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근
朴致根187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화천군 상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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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다목리(多木里)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6세로, 1874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8일 화천군 상서면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화천군 상서면의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한 인물은 이웃 마을 봉오리(峰吾里) 구장 이창선(李昌善)이었다. 이창선은 3월 27일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마을 회의를 마친 후 주요 인사 10여 명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만세운동을 제의하였다. 이창선의 제의에 박용구(朴容九)·김광필(金光弼)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자리에 있던 심경지(沈敬之)·이재영(李載榮)·김정구(金鼎九) 등도 동참하면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주도자들은 화천읍에서 장이 서는 날인 3월 28일에 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결정하고, 지역을 나누어 시위 계획을 알리기로 하였다. 다목리는 박용구와 김광필이 맡았다. 이들의 권유에 만세운동 참여를 약속하고,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는 데 힘을 보탰다. 거사 당일인 3월 28일 약속 장소인 봉오리와 파포리(巴浦里) 사이에 있는 산기슭으로 향하였다. 주도자들을 비롯한 주민들 30여 명이 함께 하였다. 이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후 상서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주도자들은 선두에서 옥양목으로 만든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였는데, 주민들은 몽둥이와 괭이, 낫을 들고 뒤를 따랐다. 면사무소로 향하는 동안 인근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시위대는 1,000여 명을 헤아렸다. 상서면사무소에 이른 시위대는 만세운동 동참을 거부한 면장 정종하(鄭鍾夏)와 서기를 끌어내어 시위대에 합류시켰으며, 면사무소를 몽둥이와 돌 등으로 부수었다. 이후 시위대는 파포리 앞 미륵고개에서 신작로 공사를 하던 일본인 기수(技手)와 산양리(山陽里)에 있던 헌병주재소 보조원을 잡아서 함께 읍으로 행진하였다. 이후 1,000여 명이던 시위대는 구운리(九雲里)·논미리(論味里)·신대리(新大里) 등의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정오 무렵에는 2,000여 명이 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시위대는 신풍리(新豊里) 앞 주막거리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쉬고 있었다. 이때를 노린 일제 경찰은 총격을 하며 시위대를 급습하였다. 점심을 먹던 시위대는 놀라서 흩어졌고, 4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이창선 등은 부상을 당하였다.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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