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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환

朴昌煥

1896. 12. 13 ~ 194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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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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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영흥(永興)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영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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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무정단(大韓獨立武政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6년 12월 13일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횡천면(橫川面) 중흥리(中興里)에서 태어났다.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와 대한독립무정단(大韓獨立武政團)에 가입한 이후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0년 4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롱징(龍井)에서 대한군정서에 가입하였다. 1923년 이후에는 대한독립무정단 소속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대한독립무정단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신민단(新民團)의 일부 세력이 조직한 것으로 알려지며, 독립을 위해서는 ‘군사적 실력과 정치적 실력을 모두 준비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무정단으로 조직하였다고 전해진다. 제1대대 소속으로 서창무(徐昌務)·김병구(金炳九)·김덕윤(金德潤)·반용환(潘龍煥) 등과 활동하였다. 1923년 말부터 1924년 초까지 중국 지린성 허롱현(和龍縣)의 황직동(黃稷洞)·팔포강(八浦江)·소팔포강(小八浦江)·황도동(黃道洞)을 비롯하여, 옌지현(延吉縣)의 수신사(守信社) 대포강(大浦江) 회령촌(會寧村) 등을 무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을 보이며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4년 1월 22일 군자금을 본부에 전달하기 위하여 이동하던 서창무·이승필(李承弼)이 훈춘(琿春) 영사관분관 경찰에 붙잡혔다. 2월 2일 중국 옌지현(延吉縣) 용지향(勇智鄕) 동판자구(東板子溝)의 근거지에서 독립신문 특파원인 김병구를 비롯하여 이객준(李客俊)·박관섭(朴寬燮)·박용화(朴溶化)·김창영(金昌英) 등과 함께 훈춘 영사관분관 경찰서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24년 9월 29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1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25년 1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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