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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석

安基錫

1897. 3. 25 ~ 196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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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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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榮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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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풍기청년회
  • · 노동교육연구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97년 3월 25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풍기면(豊基面) 금계동(金鷄洞)에서 태어났다. 경북 영주에서 풍기청년회와 노동교육연구회에서 활동하였고, 1930년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해 격문 작성과 배포를 통해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영주의 풍기청년회 간부로서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5년에는 영주에서 노동교육연구회를 조직하고 노동자·농민을 교육하고, 야학활동을 하면서 농민조합원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10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1930년 1월부터 적극적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풍기면 금계동 출신인 김준상(金俊相)과 함께 “조선 각지의 학생이 광주학생운동을 동기로 하여 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상북도, 특히 영주군의 학생들이 지극히 평온함은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며, 타도(他道) 학생에 대하여 면목 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경북 내 각 공립보통학교 학생과 청년단체원 등을 모아 민중운동을 도모하는 한편 격문을 제작하고 이를 인쇄하여 반포하였다. 1930년 1월 28일 밤 집에서 격문을 기안하였고, 다음날 밤 김준상과 격문의 초고를 상의하였는데 이때 김준상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국치기념일(國恥記念日)에 관한 격문」을 참조하여 다시 원고를 작성하였다. 1월 31일 김준상의 원고를 보완하였고, 김준상과 함께 “피가 끓는 제군이여, 제군은 과연 피가 있는가. 무엇 때문에 제군은 잠을 자고 있는가. 궐기하라. 그리고 운동장으로 시장(市場)으로 뛰쳐나와 조선민족 해방만세를 부르라, 조선 민족해방 만세 만세”라는 내용의 「학생 제군에게 격(檄)함」이라는 격문을 완성하였다. 또한 「전 조선적 학생 대 검거를 조선 총독 포악 정치 및 야만적 경찰의 압박에 전 조선 피압박 계급이여, 일제히 분기(奮起)하자」라는 글을 통해 “학생 제군이여, 일어서라. 우리들이 자유를 획득하는 점도 바로 지금이요, 우리가 활동할 시기도, 또 모든 결함·불평·불만을 배제하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바로 이때다. 학생·청년·교원 제군이여, 우리는 공장·농촌·어장(漁場)·광산·학교에 몰려가서 우리의 슬로건을 철저하게 관철시키도록 하라”라고 해서 일제에 항거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어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영주농민조합 사무소에서 가지고 온 등사판과 그 부속 기구를 사용하여 이 문서를 등사하였으나, 인쇄 작업에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함께 있던 정효동이 영주군 풍기읍내 사는 동생 정을규의 밀실을 인쇄 장소로 제공하였다. 이에 김준상과 함께 등사판과 부속 기구를 가지고 갔고 정효동을 통해 권석환도 이 계획에 가담하게 하였다. 그곳에서 300장의 격문을 인쇄하였다. 2월 1일 권석환은 영주공립보통학교에 배포하기 위하여 격문 77장을 가지고 윤차경에게 반포를 의뢰하였다. 윤차경은 이를 승낙하고, 그날 밤 이들과 함께 영주공립보통학교의 제2교사에 들어가 제3학년과 제6학년 여학생 교실 안의 학생용 책상 속에 그 문서 전부를 투입하였다. 한편 김준상과 함께 그날 밤, 인쇄한 문서를 가지고 풍기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서 김준상으로 하여금 무사히 교사 안에 들어가 제2학년 남학생 교실 안과 제5학년 남녀공학의 각 교실 안에 문서 77장을 살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돌아오는 길에 풍기농민조합과 풍기청년동맹 지부사무소에 문서 2장, 읍내 우진팔의 집에 2장, 노농야학당(勞農夜學堂)에 2장을 각각 투입하였다. 또한 풍기우편소에 들러 대구사립복명학교(大邱私立復明學校) 교사 최두한(崔斗澣)과 김천·안동·순흥의 각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인쇄된 문서 1장 내지 6장을 넣은 봉서(封書)를 보냈다. 순흥공립보통학교 학생에게는 같은 달 3일에, 대구 사립복명학교 최두한과 안동·김천 각 공립보통학교 학생에게는 4일에 각각 우편으로 보냈다. 이 일로 2월 4일 동지 18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의 조사를 받았다. 이후 1930년 7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주거침입,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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