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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命福

命福

1921. 3. 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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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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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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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연구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1년 3월 5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장승포면(長承浦面) 장승포동(長承浦洞, 현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에서 아버지 양대봉(梁大奉)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첫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남원(南原).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양원명복(梁原命福)으로 고쳤다. 유기옥(柳基玉, 文化柳氏)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936년 4월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 5학년 재학 중 학내 항일비밀결사 연구회(硏究會)에 가입하였다. 연구회는 1941년 1월 대구사범학교 5학년 임병찬(林炳讚)·이태길(李泰吉) 등이 민족의식을 높이고 독립을 위한 실력양성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였다. 연구회 회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전쟁 수행능력을 볼 때 독립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회원 각자가 학문 연구와 실력을 양성하여 각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가 되어 독립을 대비하고, 동시에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조직은 문학부를 비롯한 당시 사범학교의 교과목을 중심으로 편제하고, 회원 개개인이 능력이 있거나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부서를 담당하도록 결정하였다. 바이올린 연주 등 음악에 각별한 관심과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부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연구회에 가입한 후 회원들과 함께 서로 담당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정기적인 발표회를 가졌다. 또한 세계정세와 일제의 패전, 독립 전망 등에 대해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민족의식과 항일의지를 키워 나갔다. 동시에 연구회는 졸업을 앞둔 회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범학교 졸업 후 교사로 재직하면서 재능이 뛰어난 한국인 학생의 발굴과 지도에 중점을 두고 회원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였다.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함북 청진(淸津)에 소재한 수원국민학교(水源國民學校)의 교사가 되었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연구회의 방침대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과 함께 재능이 우수한 학생의 발굴에 주력하였으며, 학부모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활동도 모색하였다. 또한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졸업 후 교사가 된 회원들과 연락을 취하며 활동 상황을 공유하고 활동 방안을 논의하였다. 1941년 7월 연구회에 앞서 활동했던 대구사범학교 항일비밀결사 윤독회(輪讀會)가 간행한 잡지 『반딧불』과 회원들이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이 때문에 대구사범학교의 항일비밀결사 문예회(文藝會)·연구회, 이어 결성된 다혁당(茶革黨)이 드러나게 되었다. 회원들이 붙잡히는 과정에서 청진에서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2년여 동안 미결상태로 있다가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45년 광복 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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