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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구

安致九

1914. 4. 4 ~ 1939.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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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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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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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중앙고등보통학교 1차 반제동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914년 4월 4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대산면(代山面) 서촌리(西村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성장 배경이나 집안 내력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30년대 반제동맹운동은 지주와 자본가를 타도대상으로 삼고, 이를 위해 노동자와 농민, 학생과 도시 소시민, 진보적 인텔리 등을 결집시켜 운동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학생층을 중심으로 반제동맹이 조직되었다. 항일의식이 투철한 학생들이 독서회를 결성하고, 이들 중 우수 활동가들은 학교 단위의 반제동맹을 조직하려 하였다. 이를 기초로 지역과 전국단위의 반제동맹을 결성하고자 하였다. ‘중앙고보 1차 반제동맹(反帝同盟) 사건’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현 중앙고등학교) 5학년 동급생인 이재남(李載南)·홍영우(洪永祐) 등과 함께 ‘반제국주의 5학년 그룹’을 조직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학생 한치욱(韓最頊)의 지도를 받은 중앙고보 2학년생 권우성(權又成) 역시 신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회를 조직하였고, 동지를 모으기 위해 1933년 1월 독서회를 ‘제2학년 문화서클’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이들 두 조직은 서로 제휴하고 연락하며 시사 문제를 논의하였고, 전단지를 발행하여 학생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그 해 1월 하순, 교무주임으로부터 일본군의 열하(熱河, 현 청더(承德)) 출병을 위한 환송연에 나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자 동료들과 함께 이를 기회삼아 전교생에 대해 반전(反戰) 분위기를 일으키고자 격문을 배포할 계획을 세웠다. 반전과 관련된 내용은 이재남, 홍영우와 함께 살포한 격문 「제국주의전쟁을 내란(內亂)으로 전화(轉化)시키자! 노동자 농민 및 노동학생 제군(勞動學生 諸君)에게」에 잘 나타난다. 이 전단지에서는 “흡혈귀 일본제국주의는 미증유의 경제공황과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만주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진단한 후, “군수품 산업과 운수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무기와 탄약의 일체 운송을 방해하며 군수품 생산을 거절”하고, “전쟁반대와 제군(諸君)의 요구획득을 위해 ‘대중적 데모’를 조직”하라고 하였다. 또한 “중국혁명을 옹호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기(轉起)하며, 출병환영을 반전 테러로 바꾸자”고 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는 격문 450매를 등사하여 1933년 2월 5일 밤 11시 30분부터 중앙고보 본관 정면의 창문을 통해 들어가, 각 교실에 40매 가량을 배포하였다. 이러한 격문 배포가 단서가 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2개월간의 옥고를 겪고 같은 해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출옥 후 1936년 일본 도쿄(東京)의 호세이대학(法政大學)으로 유학하였으나, 감옥생활 후유증 탓에 3년 후인 1939년 5월 5일 도쿄 게이오의원(慶應醫院)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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