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구
安秉九1922. 10. 28 ~ 2007. 4.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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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5) 1922년 10월 28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감물면(甘勿面) 이담리(鯉潭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1940년 조선문화학원(朝鮮文化學院) 재학 당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항일운동을 벌이다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고향에서 혼인한 직후 유학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서울 서대문 조선문화학원(朝鮮文化學院) 중등과에 입학하였다. 1학년 재학 중인 1940년 8월부터 동급생 손용우(孫龍祐)·이종호(李鍾浩) 등과 함께 항일투쟁을 모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한다면 일본을 공격할 것이니 이를 독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동지들과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신라 정벌과 같은 역사 왜곡과 『동아일보』·『조선일보』의 폐간 등을 비판”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나갔다. 같은 해 9월 28일 저녁에 「조선 독립의 필요」라는 선전물을 배포하였다. 이어 10월 1일에는 이종호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 이른바 ‘시정기념일(施政記念日)’에 중국요리점 회선각(會仙閣) 앞 사직공원(社稷公園) 정문에 세워져 있던 국세조사선전(國勢調査宣傳) 입간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연필로 써 넣었다. 이 사건으로 1940년 10월 7일 이종호가 붙잡히고 나서 얼마 뒤 붙잡혔다.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보안법 위반, ‘조언비어(造言蜚語) 유포’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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