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弘澤
弘澤1909. 6. 20 ~ 1959. 12.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2)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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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2) 1909년 6월 20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삼기면(三箕面) 간촌리(間村里)에서 태어났다. 1929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아 동맹휴교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을 듣고 일제 경찰이 한인 학생만을 처벌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였다. 이에 그 해 12월 8일 서울 송현동(松峴洞) 강상덕(姜相德)의 집에서 동급생 강대성(姜大成)·강상덕·황한희(黃翰橲) 등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에 동참하기로 하고 동맹휴교를 계획하였다. 이에 “광주학생사건에 관련하여 검거된 자를 석방하라.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여하라” 등을 내용으로 한 진정서 2통을 작성하였다. 진정서는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의 선전부장인 같은 학교 4학년 김순희(金淳熙)가 제시한 “광주학생사건에 관련하여 검거된 자를 석방하고,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부여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진정서를 1929년 12월 9일 같은 학교 학생 최진한(崔鎭漢)이 교장에게 제출하였고, 강대성이 진정서를 베껴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낭독한 후 동맹휴교를 하자고 권유하였다. 700여 명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인 가운데 ‘광주학생 만세’를 외치는가 하면, “우리들은 광주 생도에 동정하여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동맹휴교를 단행하자”며 결의를 다졌다. 그 뒤 교내 동맹휴교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1년간 감옥에서 고초를 겪은 뒤 193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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