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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일

承炳逸

1926. 6. 10 ~ 202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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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승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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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오산학교
  • · 혈맹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0) 1926년 6월 10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고안면(高安面) 안흥리(安興里)에서 11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의 독립단(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승치현(承致賢)의 손자이다. 1943년 4월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재학 중, 선우전(鮮于塡)·조응택(趙應澤)·고창정(高昌廷)·지세붕(池世鵬)·윤영언(尹英彦) 등의 학우들과 함께 비밀결사 혈맹단(血盟團)을 결성하였다. 이들의 행동강령은 중국 충칭(重慶)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과 연결하여 뜻있는 청년과 학생들을 망명시켜 광복군에 참여토록 하는데 있었다. 또한 조국 독립의 최전선에 나서기 위하여 각자가 심신 단련에 힘쓸 것도 결의하였다. 이들은 동지 규합에 힘쓰는 한편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 등을 윤독하며 항일민족의식을 함양하였다.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45년 혈맹단 조직이 노출되어 평북 용암(용천군)경찰서에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45년 5월 15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되어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광복으로 풀려났다. 동국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안동농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통역장교로 자원 입대하여 창녕 박진나루터 전투에 참가하였다. 말년에 장학회를 설립하여 고향과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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