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렬
徐正烈1882. 12. 24 ~ 1944. 3.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청주군 미원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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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82년 12월 24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현 청주시) 미원면(米院面) 미원리(米院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이명은 서성렬(徐成烈)이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미원면에서도 신경구(申敬求) 등이 주도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신경구는 이수란(李水蘭)·이용실(李容實) 등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하였다. 이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하는 한편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3월 30일 오후 1시 신경구는 미원장터 사거리로 나가 태극기를 흔들며 장터 군중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순식간에 100여 명의 군중들이 모였다. 이때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선두에 서서 군중을 이끌었다. 그러자 사거리에서 약 200보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미원헌병주재소에서 헌병이 달려와 태극기를 빼앗고 시위 군중을 강제적으로 해산시키려 하였다. 군중이 더욱 늘어나자, 헌병은 시위 주도자 신경구를 붙잡아 헌병주재소에 구금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신경구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또한 신정식(申鼎植)과 함께 장터에서 귀가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신경구의 구출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시위대가 1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이들을 이끌고 다시 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신경구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주재소 유리창, 주재소 정문 기둥 등을 파괴하는 등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청주경찰서 수비대 일부 병력까지 동원되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아 1명이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방해죄는 무죄를 받았으나 징역 10월은 유지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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