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윤
吳秉允1901. 11. 20 ~ 1973. 4.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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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5) 1901년 11월 20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중문면(中文面) 하원리(河源里,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서 아버지 오영준(吳永俊)과 어머니 강씨(姜氏) 사이에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오병용(吳丙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18년에 일어난 법정사(法井寺) 항일 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전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 시위는 일제강점기 제주도의 항일운동을 대표하는 항일투쟁이었다. 법정사 항일시위를 이끈 사람은 경북 영일군(迎日郡, 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출신인 김연일(金連日)이었다. 항일 무력 항쟁은 1918년 10월 4일부터 시작되었다. 김연일은 법정사 주변의 좌면(左面)과 우면(右面)의 마을 이장들에게 “장정을 이끌고 10월 7일 오전 4시 하원리에 집합하라. 10월 8일에는 제주성을 습격하여 일본인을 추방하라”는 내용의 격문을 배포하였다. 다음날인 10월 5일에는 법정사에서 청장년 33명으로 무력 항쟁을 이끌 선동대가 결성되었다. 이때 22살의 나이로 선동대에 참여하였다. 이날 김연일은 자신이 불무황제임을 선포하고 박주석(朴周錫)을 도대장(都大將), 방동화(房東華)와 강민수(姜敏洙)를 좌우대장, 양남구(梁南久)를 중군대장, 김삼만(金三萬)을 후군대장, 장임호(張林虎)를 모사(謀師)로 삼았다. 김연일은 또한 “자신이 제주도의 왕이 된 후 충남 계룡산(鷄龍山)을 수도로 하는 나라를 세울 계획”임을 밝혔다. 계룡산은 1924년 갑자년에 강일순(姜一淳)이 재림한다고 알려진 일종의 ‘성지’였다. 1918년 10월 7일 새벽 법정사에 집결한 선봉대 33명의 한 사람으로 선봉대장인 강창규(姜昌奎)·박주석·장임호와 함께 서귀포(西歸浦) 방면에서 무력 항쟁을 개시하였다. 선봉대는 화승총 3정, 몽둥이 수십 개와 큰 깃발을 내세우고 절을 내려갔다. 박주석과 강창규가 서귀포 습격을 중지하고 중문리(中文里, 현 서귀포시 중문동)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기로 전술을 바꾸면서 중문리에 이르러서 경찰주재소장인 요시하라(吉原)를 비롯한 경찰 3명을 포박한 뒤 경찰주재소에 갇혀있던 13명을 풀어주었고, 주재소 건물에 불을 질렀다. 같은 날 오전 11시 서귀포경찰주재소 기마 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공격해 오자 항쟁 대오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38명이 붙잡혔고 법정사는 불태워졌다. 이날 현장에서 붙잡혔다. 법정사 항일 시위로 66명이 구속되어 31명이 실형을 받았다. 2명은 재판을 받기 전에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1918년 10월 21일에 구속되어 같은 해 11월 11일에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열린 재판에서 이른바 소요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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