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룡
吳貴龍1885. 10. 30 ~ 1970. 10.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인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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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5) 1885년 10월 30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산양면(山陽面) 송죽리(松竹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에 의한 창씨명은 죽원귀룡(竹原貴龍)이다. 어려서 고향에서 침술을 배워, 일제강점기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의료 활동을 하였다. 보천교(普天敎) 교도로서 일제강점기 말, 전북 정읍에서 보천교 계통의 비밀결사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당시의 주소지는 전북 정읍군(井邑郡, 현 정읍시) 신태인읍(新泰仁邑) 구석리(九石里)로 되어 있다. 1938년 (음)4월 전북 정읍·김제(金堤) 등지의 보천교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결사 신인동맹(神人同盟)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보천교는 원래 강일순(姜一淳)이 창시한 증산교(甑山敎)에 그 연원을 두고 있었다. 강일순의 사후에 제자 차경석(車京石)이 정읍에 본부를 두고 1911년에는 선도교(仙道敎, 뒤에 태을교), 1921년에는 보화교(普化敎)로 고쳤다가 1922년 보천교로 개칭하여 재탄생한 종교이다. 하지만 교주(敎主) 차경석이 자신의 종교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1925년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을 조직하자, 그 내부에서 ‘보천교 혁신운동’이 일어나면서 내부에 여러 분파가 생겨났다. 그러다가 1936년 차경석 사망 후 조선총독부의 ‘유사종교(類似宗敎) 해산령’에 따라 교단은 해체되었다. 이후 전시체제기에 들어서고 나서 보천교도 정인표(鄭寅杓)가 김제의 금산사(金山寺)를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결성한 비밀결사가 신인동맹이었다. 정인표는 각지의 증산교 계통의 교도들을 방문하여, “미타불(彌陀佛)의 영(靈)을 받은 자신이 장차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할 것이라고 설파하였다. 특히 당면한 중일전쟁에서 일본인은 모두 전사하여 조만간 멸망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정감록(鄭鑑錄)』에 나오는 정씨(鄭氏)의 정통으로서 조선을 독립시켜 왕이 될 것이니 자신과 행동을 함께 하면 이후 관리로 등용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일제 패망과 한국 독립을 기원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해갔다. 그 결과 김제를 중심으로 반경 15리 19개 군내에 구역을 정하여 각 군에 책임자를 두고 8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신인동맹에 가입하여 다른 동지들과 함께 하부조직을 꾸리고 운동자금 조성에 노력하면서, 독립을 목적으로 한 정치요강을 함께 토의 연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동맹 내부에 조를 편성하여 경찰서 습격 등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40년 12월 김제경찰서의 지휘 아래 정읍·이리(裡里, 현 익산시)·군산(群山)·부안(扶安)·전주(全州) 등지의 각 경찰서에서 보천교도 42명이 구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1940년 12월 15일 정읍경찰서에 수감되어 약 1년 반 동안 조사와 고문을 받았다. 이후 1942년 4월 11일 정인표 등 28명과 함께 기소되었으나, 최종 재판에 이르기까지는 또 다시 약 1년 반이나 걸렸다. 1943년 10월 6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통산 400일)을 받았다.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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