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止淵
止淵1883. 6. 21 ~ 1961. 2.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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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3년 6월 21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벽진면(碧珍面) 해평리(海平里)에서 여영진(呂英鎭)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호는 복재(復齋), 자는 경신(敬臣)이다. 1908년 2월 설립된 대한협회(大韓協會) 성주지회에 참여하여 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구국 운동에 뜻을 두고 국권 회복 방책을 모색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유생들과 기독교 신도들이 연합하여 성주읍 장날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때 성주군 월항면(月恒面) 대포리(大浦里)의 이기정(李基定) 등과 함께 대포리의 성주 이씨(星州 李氏), 초전면(草田面) 고산리(高山里)의 야성 송씨(野城 宋氏), 대가면(大家面) 칠봉리(七峯里)의 의성 김씨(義城 金氏)와 청주 정씨(淸州 鄭氏) 등 유력한 사족 가문을 규합하였다. 나아가 기독교 계열의 인사들을 규합하여 만세를 부르기로 합의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면(星州面)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 모인 기독교인들이 ‘독립만세’를 불렀고, 이에 유생들이 호응하여 밤 10시까지 각처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날 저녁 무렵 성주면 경산동 앞 도로상에서 선남면(船南面) 문방동(文方洞)의 석연극(石鍊極)을 비롯한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1919년 4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어 같은 해, 국민대회(國民大會)에 참가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동지 모집과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국민대회는 김교훈(金敎勳) 등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기독교 계열의 청년 단체가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1919년 (음)8월, 성주군 용암면(龍巖面) 죽전동(竹田洞) 출신의 정상진(丁尙鎭)이 독립운동을 펴기 위해 임시정부로 가고자 했으나 자금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금 조달 방법에 관해 협의하였다. 이때 문진창(文鎭昌) 등과 함께 전북 김제군(金堤郡)에 거주하는 송시용(宋始鏞)의 토지를 저당하여 군자금을 마련키로 하였다. 저당권 등기 설정에 필요한 서류와 토지 관할지인 초전면(草田面) 면장(面長)의 도장을 위조하여 사용하려다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1920년 11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공인·공문서 위조죄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5년 5월 벽상청년회(碧上靑年會)가 경영하는 성주군 용암면의 자양서당(紫陽書堂)에 설립된 자양학원(紫陽學院)이 자금 문제로 폐교 위기에 처하자 여철연(呂徹淵)·여홍연(呂弘淵)·여동연(呂東淵) 등과 함께 후원금을 내는 등 지원하였다. 또 자양학원에서 청소년 교육과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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