呂大鉉
大鉉1918. 4. 4 ~ 1991. 5.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효민회(曉民會)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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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8년 4월 4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현 화성시) 석포리(石浦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궁원대현(宮原大鉉)으로 고쳤다. 1943년 서울 종로구(鐘路區) 성북정(城北町)에서 거주하던 중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 방략을 모색하다가 붙잡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1939년 3월 서울 중앙중학교(中央中學校)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상과에 입학하였다. 1941년 4월 보성전문학교 재학 당시 일본에서 항일결사 효민회(曉民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귀국한 동문 최홍준(崔弘俊)와 만나 일본에서 겪었던 민족차별에 대한 실상을 전해 들었다. 이에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로 맹세하였다. 또 조국 독립의 실현을 위해 민중의 지도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먼저 한국 민족의 문화 향상·경제력 향상에 노력하는 한편 한국어 유지 연구를 통한 민족의식 양양과 독립운동에 궐기할 것 등을 협의하였다. 보성전문학교 졸업 후 회사원 신분으로 1943년 2월 최홍준·성장환(成章煥) 등과 함께 성북동(城北洞) 소재 자신의 집에 모여 독립운동의 방안에 관해 토론을 갖고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이 자리에서 동지들과 함께 더욱 협력하여 난관을 돌파하고 독립을 위해 매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아울러 동지 규합 노력과 함께 동지 간 유대를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戰況)을 논의하면서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스탈린그라드(Сталинград)를 소련인들이 슬라브 민족의 끈기와 소련의 겨울 추위에 힘입어 다시 탈환하였으며, 유럽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패전하면 일본도 결국 패전할 것임으로 이는 한국 민족에게 독립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또 다가올 독립에 대비하여 독립투쟁의 실천방안을 더욱 구체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자, 동지들 모두와 함께 붙잡혀 대구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944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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