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이
徐學伊1900. 6. 15 ~ 1955. 4.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용진단(勇進團)
- · 진우연맹(眞友聯盟)
- ·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
- · 파괴단(破壞團)
- · 반역아연맹(叛逆兒聯盟)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대구진우연맹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0년 6월 15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성주면(星州面) 대황동(大皇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서흑파(徐黑波)를 사용하였다. 1920년대에 대구 용진단(勇進團), 무정부주의 단체 진우연맹(眞友聯盟)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5년 1월부터 대구에서 북풍회(北風會)계의 관련 단체 용진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용진단은 수양과 무산자의 단결을 동시에 주장한 지역 사회운동 단체였다. 1925년 4월 20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전선민중운동자대회(全鮮民衆運動者大會)에 참가하기 위해 단원들과 함께 상경하였다. 그러나 일제 관헌이 안녕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며 보안법 제2조 위반을 들어 대회를 불허하였다. 일제의 저지를 무시하고 용진단원을 비롯한 민중운동자대회 참석자들과 함께 같은 날 저녁 종로 2가 우미관 앞에서 적기(赤旗)를 휘두르며 ‘무산자 만세’를 고창하면서 단성사(團成社)까지 행진하였다. 이 행진에 함께한 단체와 사람들은 대구 용진단의 서상욱(徐相旭)·신철수(申哲洙)·권도길(權吉道)·김민동(金旻東)·김점성(金占成)·최보림(崔補林)·윤일파(尹一波) 등과 경성청년회 서범석(徐範錫), 신흥청년동맹 김창준(金昌俊), 대구 아구동맹(我求同盟) 박광세(朴光世), 마명(馬鳴)이라는 이명으로 더 잘 알려진 대구 마승주(馬昇宙), 조선일보 마산지국(馬山支局) 기자 김상주(金尙珠) 등이었다. 행진한 이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보안법 위반으로 종로경찰서에 유치되었다. 같은 해 6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25년 9월 29일 대구에서 신재모(申宰模)·방한상(方漢相)·정명준(鄭命俊)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을 조직하였다. 이후 일본 무정부주의단체와의 연결을 위해 방한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에서 자아사(自我社)를 설립하고, 기관 잡지 『자아(自我)』를 발행하면서, 무정부주의 잡지『반역(反逆)』을 발행한 구리하라 가즈오(栗原一雄)와 접촉하게 되었다. 일본인 무쿠노키 카즈오(掠本運雄)와 김정근(金正根) 두 사람까지 참가하게 되어 진우연맹원은 늘어났다. 박열(朴烈)의 사형을 받았을 때 향후 박열의 시신 인수와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입적(入籍) 용무로 박열의 형 박연식(朴延植)을 만나기 위해 대구로 온 구리하라 가즈오를 만났다. 구리하라로부터 일본 무정부주의 조직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이 벌인 도쿄 긴자(銀座) 상점 파괴 등의 활동 상황을 설명 듣고, 흑색청년연맹에 가맹하였다. 1926년 4월 신재모의 집에 함께 모여 파괴단(破壞團)을 결성하고, 그 활동 방침을 정하였다. 이 자리에서 일본의 흑색청년연맹처럼 무정부주의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인 부호에게 자금을 모금하기로 하였다. 1926년 8월 15일을 기해 대구부(大邱府)에 있는 경상북도 도청, 대구경찰서, 대구지방법원 등 주요 관청을 비롯하여 각 은행, 회사 등 중요한 건물을 폭파하는 동시에 도지사를 비롯한 주요 관리를 한꺼번에 모두 암살하며, 대구에서 주요 관공서가 밀집한 거리인 원정통(元町通, 현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일대)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폭탄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확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5월초에는 일본의 구리하라 가즈오를 초빙하여 파괴단이 세운 계획에 대해 자문을 요청하였다. 구리하라는 방한상과 함께 상경하여 평양(平壤) 출신 김원(金元)을 만나 상하이로부터 폭탄 반입 계획을 견실히 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상하이에서 진행 중이던 극동무정부주의총연맹이 성립되면, 이에 가입하여 국제적 연대를 갖기로 하였다. 1926년 5월 신재모가 김정근에게 전달받아 진우연맹 구성원에게 배포했던 반역아연맹(叛逆兒聯盟) 선언서를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신재모·방한상·정명준 등과 함께 반역아연맹에 가맹하였다. 그러나 진우연맹원 안달득(安達得)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면서, 진우연맹의 전모가 드러났다. 1926년 6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경북경찰부와 대구경찰서의 합동 조사를 받고 난 뒤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27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일수 중 1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2년 1월 25일 만기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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