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순
徐秉舜1885. 1. 3 ~ 1920. 8.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천안군 병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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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85년 1월 3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병천면(竝川面) 병천리(竝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한자가 다른 서병순(徐秉淳·徐丙順)이 있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병천면 아우내(竝川)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다가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竝川) 장터의 만세시위는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유관순(柳寬順)이 고향으로 내려온 뒤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조인원(趙仁元)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4월 1일 아우내 장터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3월 31일 밤 예배당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날 밤 자정에는 천안 길목, 수신면(修身面) 산마루, 진천(鎭川) 고개마루 등지에 4월 1일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올렸다. 4월 1일 오후 1시, 조인원이 ‘대한독립’이라 쓴 큰 깃발과 태극기를 들고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때 시위대에 참여하여 태극기를 들고 3천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친 뒤에 시장 일대를 행진하였다. 병천헌병주재소의 코야마(小山) 소장 등 5명이 출동하여 해산을 종용하였으나 시위대가 불응하자 헌병들이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시위 군중과 함께 부상자들을 응급조치하였고 사망자를 주재소로 운구하는 한편 헌병들의 무력 탄압에 항의하고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주재소에는 3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헌병들이 군중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40여 명과 더불어 주도적으로 “주재소 소장을 죽이라”며 소리치면서 돌을 던져 주재소 유리창을 깨뜨리고 경계 철조망을 망가뜨렸으며 유치장의 뒷벽을 부쉈다. 오후 4시 헌병들은 천안 철도엄호대장 등 6명이 도착하자 발포하며 무력으로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로 인해 19명이 사망하였고, 30여 명과 함께 총상을 입었다. 부상 후 붙잡혀 수감되었으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벌금 20원, 노역장 유치 20일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부상이 악화되어 1920년 8월 11일 옥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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