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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근

朴昌根

1882 ~ 19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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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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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로군정서 의용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920년 일제가 남긴 자료에 따르면 사망 당시 39세로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만주 지역에도 항일운동 단체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에게 크게 승리하자, 일본군은 같은 해 8월 이른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을 작성하였다. 이를 토대로 일제 내각은 그해 10월 7일 북간도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조선주둔일본군 사령관 오바 지로(大庭二郞)에게 북간도 지역의 ‘불령선인 및 마적’을 ‘초토화’시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1920년 10월부터 이른바 일본군의 북간도 지역 ‘토벌’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감행된 제1기 때,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는데,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더욱이 10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김좌진(金佐鎭) 등이 지휘한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연합한 만주 독립군 부대에 일본군이 크게 패하는 청산리전투가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의 학살은 더욱 잔혹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숭화사(崇化寺) 대옥석동(大玉石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항일활동을 펼치다가 1920년 12월 11일 일본군 제19사단 보병 제73연대에게 붙잡혀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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