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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률

安昌律

1918. 6. 2 ~ 194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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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안창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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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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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결심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대왕산 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18년 6월 2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남곡동(南谷洞)에서 태어났다. 결심대(決心隊)에서 징용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말기 일제는 한국인 청년들을 강제 징용시키기 위하여 청년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청년들을 훈련시켰다. 이에 반발하여 남산면사무소 직원인 박재달(朴在達)과 서기 박재천(朴在千)·김인봉(金仁鳳) 등의 주도로 징용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1944년 7월 5일 성상룡(成相龍)·최동식(崔東植)과 함께 첫 모임을 갖고 거사에 대해 논의하였으며. 7월 15일까지 3차례 모임을 가졌다. 이들의 뜻에 찬성하여 징용반대운동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7월 25일 밤 남산면의 각 마을 청년 26명과 대왕산에 집결하였다. 박재달·박재천·김인봉 3명은 상황을 살피기 위해 마을에 남았다. 산에 오른 청년들은 효율적인 항쟁을 위해서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고, 3개의 일반소대와 정보연락책 1개로 편제를 나누었다. 이때 단원들의 추대로 대장을 맡았다. 결심대의 대원들과 기거할 막사를 만들고, 경방단과 일제 경찰에 의한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돌과 바위를 모아 요소요소에 배치하였다. 7월 27일과 8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결심대의 항거를 진압하고자 출동한 일제 경찰의 발포에 대응하여 대원들과 함께 돌과 죽창으로 투석전을 벌였다. 일제 경찰은 후퇴하였지만, 식량이 떨어지고 은거지도 노출되어, 8월 4일 남산면 부근 용산(龍山)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새로운 근거지도 쉽게 드러나 또 한 차례의 전투를 치렀다. 결심대를 이끌고 세 차례의 전투를 치렀지만, 식량 확보의 어려움이 따랐다. 8월 9일 전 대원이 하산하여 은신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붙잡혔다.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오랜 시간 유치장에 갇혀 매를 맞는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45년 4월 6일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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