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규
朴俊圭1863. 3. 6 ~ 1919. 4.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천안군 갈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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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63년 3월 6일 충청북도 청원군(淸原郡) 오창면(梧倉面) 성재리(盛才里, 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재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박준규(朴駿圭)를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도 같은 곳에 거주하며,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갈전면(葛田面) 병천리(竝川里,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의 병천시장(竝川市, 아우내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관순(柳寬順)은 부친 유중권(柳重權)을 비롯하여 유중무(柳重武)·조병호(趙炳鎬)·조만형(趙萬衡)·김상훈(金相訓)·김용이(金用伊)·박봉래(朴鳳來)·김교선(金敎善)·이순구(李旬求) 등과 함께 병천시장의 장날인 4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4월 1일 시위 주도자들이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의 병천시장에서 시장 상인과 주민들을 권유하여 500~6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여기에 참여하였다. 이들과 함께 오후 1시부터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주변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들었고, 시위 군중은 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병천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만세시위의 중지와 해산을 요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불응하며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총을 발포하여 무력 진압에 나섰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시위 군중은 일시적으로 흩어졌다가 재집결하여 사망자의 시신을 주재소로 옮기고, 일제 헌병들에게 항의하였다. 이때 주변에서 격분한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몰려와 주재소를 공격하였고, 유리창·철조망·건물 일부 등이 파괴되었다. 일제 헌병들이 다시 총을 쏘고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 군중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여 다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제 헌병의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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