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설
朴鍾卨1888. 10. 7 ~ 1947. 5.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이천군 마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8년 10월 7일 경기도 이천군(利川郡) 마장면(麻長面) 관리(冠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이천군 마장면 오천리(午千里)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 만세운동 소식이 이천 지역에 전해지자, 관리에 거주하는 이창호(李昶鎬)·김기재(金起載)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과 함께 오천 장날인 1919년 3월 30일에 거사하기로 계획하고 장터에 모일 것을 촉구하는 사발통문을 각 마을에 보냈으며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다. 그러나 오천리 구장(區長)이던 표광수(表光洙)가 오천주재소(午千駐在所)에 밀고하여 일제 경찰의 경계가 삼엄해졌다. 이에 굴하지 않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30일 거사 장소인 오천리 장터에는 근처 마을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들은 각 마을 별로 만세운동을 벌였으며 밤이 되자 봉화시위까지 하였다. 특히 이 운동의 중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인 이창호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자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시위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의 총검에 의해 10여 명이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이튿날인 31일에도 만세운동은 이어져 오천리에서 음지다리 방향으로 시위 군중이 이동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분견소 측에서 총을 쏘아 이를 제지하였으며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만세시위 직후 일제 군경은 오천주재소 헌병보조원 박태근(朴泰根)·서정수(徐廷洙)를 동원하여 시위 주도자 색출에 나섰다. 이때 붙잡혀 1919년 5월 31일 경성지방법원 여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