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익
白順益1882. 9. 16 ~ 1963. 6.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수원군 장안면
- · 우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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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2년 9월 16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수촌리(水村里, 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3일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雨汀面, 현 우정읍)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이후 서울과 가까운 수원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의 흐름을 이어받아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나타났다. 1919년 4월 2일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石浦里)의 차병한(車炳漢)과 차병혁(車炳爀)은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4월 3일 장안면사무소로 모일 것을 면민에게 통지하였다. 이때 시위를 기획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이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천도교 조직이 큰 역할을 하였다. 우정면과 장안면은 천도교 수원대교구 산하 남양교구(南陽敎區)에 속했는데, 남양교구의 순회교사이자 장안면 수촌리 출신인 백낙열(白樂烈) 등은 서울에서 진행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수촌리로 돌아와 이 지역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3일 오전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이 장안면사무소에 모였을 때 함께 하였다. 시위대는 업무를 보던 장안면장 김현묵(金賢默)을 붙잡고 동행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면사무소의 가구와 서류·장부를 파손하고 창문을 깨뜨렸다. 이후 오후 3시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정면 쌍봉산(雙峯山)에 올라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주변 지역에서 소식을 듣고 온 이들이 참여하여 시위대의 수는 더욱 늘어나 1,000여 명이 되었다. 이때 시위 행진에 참여하여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우정면사무소로 향한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를 포위한 뒤, 서류를 꺼내 불태우고 돌을 던져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같은 날 오후 5시 시위 군중은 모두 몽둥이로 무장하고 차병한의 주도하에 우정면 화수리(花樹里) 화수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2,000여 명의 시위대는 주재소를 포위하고 세 방향으로 나뉘어 습격하였다.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둘러 시설을 파괴하고 불을 놓아 주재소를 전소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재소 안에 있던 조선인 순사보 2명은 도주하였고, 1명은 붙잡혀 구타를 당하였다. 또한 일본인 순사는 권총을 발사하며 도주하다가 인근 야산에서 붙잡혀 살해당하였다. 주재소가 완전히 불타고 날이 어두워지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하고 순사를 살해하는 등 격렬하게 진행된 4월 3일의 만세시위 이후 주도자를 색출하는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은 장안면과 우정면 만세시위와 관련된 이들의 재판을 경성지방법원으로 넘겼으나, 경성지방법원은 해당 건의 공소를 수리하지 않았다.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살인죄, 방화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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