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樂烈
白1865. 12. 20 ~ 1937. 1.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2)
관련 사건
- · 수원군 장안면
- · 우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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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2) 1865년 12월 20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수촌리(水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천도교(天道敎) 남양(南陽) 교구에서 전도 업무를 담당했으며, 수촌리 구장(區長)이었다. 4월 3일 장안면·우정면(雨汀面)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를 위해 팔탄면(八灘面) 고주리(古州里)의 김성열(金聖烈), 향남면(鄕南面) 제암리(堤岩里)의 안종후(安鍾厚) 등과 연락하고 본격적인 거사에 착수하였다. 더불어 남양 교구 산하의 연락망을 이용하여, 거목골의 이종근(李鍾根), 기림골의 김익배(金益培) 등과 만세운동을 논의하였다. 이와 함께 천도교 중앙의 이병헌(李炳憲)과 연락하여 만세운동 조직화에 힘쓰고, 장안과 우정 일대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하였다. 4월 3일 거주지인 수촌리에서 사환(使喚) 이원준(李元俊)과 정순영(鄭淳榮)을 통해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수촌리를 비롯해 석포리(石浦里)와 주곡리 등에서 모인 200여 명의 시위대는 장안면사무소(長安面事務所)로 나아갔다. 그리고 면장인 김현묵(金賢默)에게 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다가 시위대가 장안면사무소를 습격하였는데, 시위대를 진정시키고 평화적 시위를 주장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면장 김현묵을 앞세워 우정면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쌍봉산(雙峯山)으로 이동하였으며, 그 규모는 1,000여 명까지 불어났다. 이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다음, 깃발과 몽둥이 등을 휴대하고 우정면사무소(雨汀面事務所)로 나아갔다. 시위대는 직원들이 도피한 면사무소를 공격하였고, 화수리(花樹里)에 위치한 주재소(駐在所)로 이동하여 공세적인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인 가와바다(川端豊太郞)가 시위대를 향해 권총을 발사해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대는 도주하던 가와바다를 붙잡아 단죄하였으며, 주재소 건물을 소각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일제는 군 병력을 동원하여 만세운동을 탄압하였다. 30여 명의 일본군 수비대는 수일에 걸쳐 수촌리 일대의 민가를 불태웠으며, 주민들을 살상하는 등의 보복행위를 자행하였다. 4월 말까지 만세시위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 붙잡혔지만, 다행히 검거를 피하고 수도암(修道庵)이라는 암자에 은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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