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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숙원

裵淑元

1875 ~ 191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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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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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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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합천군 삼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회면(佳會面) 장대리(將臺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합천군 지역 만세운동에서 가장 격렬했고 대규모로 진행된 삼가면 삼가시장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현장에서 일제 군경에게 희생되었다. 합천 지역 만세운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종의 장례식을 계기로 유림 등 지역 인사들이 서울로 올라와 서울의 만세시위를 접하고 독립선언서를 지참하여 돌아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가회면 지역 유림인 윤구현(尹圭鉉)이 김상준(金相峻)과 함께, 서울의 만세운동을 접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즉시 뜻을 같이하는 지사들과 거사를 준비하였다. 합천군 최초의 만세시위는 3월 18일 가회면·상백면(上栢面)·백산면(栢山面) 주민들이 연합한 삼가면 읍내 만세시위였다. 이후 합천군에서는 거의 매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9일 대양면(大陽面) 주민들이 주도한 합천 읍내 시위가 20일과 22일까지 이어졌다. 3월 20일 대병면(大幷面) 창리(倉里)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고, 3월 21일에는 초계면(草溪面)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23일 삼가시장 만세시위가 절정이었으며, 이때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선두에서 시위 군중을 이끌고 만세를 불렀다. 1919년 3월 23일 만세시위에 참가하는 군중들이 삼가면 읍내에 모였을 때, 시위대는 약 1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는 공재규(孔在奎)·정치규(鄭致圭)·정원규(鄭元圭)·진택현(陳宅賢) 등과 함께 연고 지역을 맡아 조직적인 동원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장날인 3월 23일 삼가시장에는 합천군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인근 의령군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만세시위에 가세하였다. 만세시위는 처음부터 물리력을 동반하여 격렬하게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읍내 객사(客舍) 바깥채인 정금당(淨襟堂)이 큰 태극기와 함께 중심 무대가 되어 즉석에서 군중 집회가 개최되었다. 정방철(鄭邦哲)·김전의(金典醫)·김달희(金達熙)·임종봉(林鍾鳳) 등 주도자들이 차례로 정금당 계단 위에 서서,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에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정금당 계단 위에서 연설하던 임종봉에게 일본군 헌병이 발포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임종봉이 대퇴부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본 군중들은 일시에 분노가 폭발하였다. 이때 선두에서 곤봉·낫·호미 등을 손에 든 성난 군중을 지휘하여 발포한 일제 군경을 쫓아, 읍내 주재소와 우편소 등으로 몰려갔다. 일제 군경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시작하였다. 이날 현장에서 사망한 이들에 대한 숫자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제는 5명으로, 외국인 선교사측은 21명으로 보고하였다. 아울러 부상자도 20~30여 명이나 발생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이 쏜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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