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裵祥祺1892. 1. 31 ~ 1967. 11.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합천군 합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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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1월 31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용주면(龍州面) 팔산리(八山里)에서 태어났다. 배기상(裵祺祥)이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합천면 읍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합천면 읍내 만세시위는 3월 19일 합천 읍내에서 전개된 시위와 연결되어 있다. 대양면(大陽面) 주민들은 3월 19일 합천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이튿날 면민들이 다시 궐기하여 다시 읍내로 나간 것이다. 3월 19일 합천 읍내 만세시위는 대양면 출신의 유림인 강홍렬(姜弘烈)이 서울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져오면서 촉발되었고, 대양면민이 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대양면 대목리(大目里)의 심재기(沈載祺)·심진환(沈瑨煥) 등이 주도하였고, 거사 계획 역시 대목리 이계(伊溪)에 있는 수암정(修巖亭)에서 이루어졌다. 합천 읍내 장날인 3월 19일 약 500명 정도의 군중이 모여 시장을 누비며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는데, 일제 경찰이 시위를 폭압적으로 진압하고 심재기 등 주도자 10여 명을 붙잡았다. 여기에 분노하여 대양면민들과 함께 이튿날인 3월 20일 대목리 마정(馬亭) 마을에 모여 재차 만세시위를 결의하고 합천 읍내로 나아갔다. 시위대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합천 읍내에 도착한 후에는 거리를 누비며 시위를 계속하였다. 저녁 7시경 약 500명 규모로 늘어난 시위대를 이끌고 합천경찰서로 가서 만세를 부르며 일제 경찰들과 대치하였고, 김영기(金永琪)·추용만(秋鏞滿) 등과 함께 3월 19일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합천경찰서장은 해산을 명령하고, 소방부와 같이 시위 진압을 시도하였다. 이에 격분해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경찰서 안으로 돌진하였다. 일제 경찰들은 공포탄를 쏘며 시위대를 경찰서 밖으로 쫓아내려고 하였으나, 시위대는 물러나지 않고 시위를 계속하였다. 결국 시위대를 향해 일제 경찰의 실탄 사격이 시작되었고, 그 자리에서 김영기·추용만 등 4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이후 혹독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을 받고 부산감옥 진주분감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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