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도근
裵道根1866 ~ 1923. 7.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1)
관련 사건
- · 의성군 비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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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1)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쌍계동(雙溪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66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비안면 쌍계동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의성군 비안면의 기독교계가 적극적인 만세운동 국면으로 돌입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인물은 김원휘(金原輝)였다. 김원휘는 1919년 3월 3일 평양신학교 입학을 위해 평양에 체류하던 중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의성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쌍계동 장로교회 목사인 박영화(朴永和)를 찾아가 전국적인 만세운동 상황을 전하며, 의성에서도 자체적인 만세운동을 위한 준비에 나설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를 받아들인 비안면 기독교계는 김원휘를 위시하여 박영화와 박영달(朴永達) 등을 지도부로 하여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들은 3월 6~7일경 쌍계동과 안평면(安平面) 괴산동(槐山洞)의 교회에서 만나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참여할 동지를 규합하고자 지역 사회에 은밀히 거사 준비 소식을 전파하였다. 이때 박영화 등의 권유를 받아 동료인 이일만(李一萬)·박세길(朴世吉)·김명출(金明出) 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1919년 3월 12일 박영화·박영신(朴永新)·배중엽(裵重曄)·박영달 등은 박영신의 집에서 만나 태극기 200여 개를 제작하였고, 이날 만세운동을 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오후 1시경 쌍계동 박영신의 집 앞 도로에는 같은 날 오전 서부동(西部洞)에 위치한 비안공립보통학교 뒷산에서 만세시위을 거행한 뒤 합류한 학생들과 거사 소식을 듣고 모인 주민 등 200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주도자들과 함께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군중에게 배포하는 것을 신호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마지막에 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마을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에의 열망과 의지를 드러냈다. 시위대는 마지막으로 마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부른 후, 자진 해산하여 평화적으로 집회를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오후 4시 만세시위에 관한 급보를 받은 의성경찰서에서 한국인 경부와 순사부장을 급파하여 비안주재소 경찰과 함께 시위 주도자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날 치안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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