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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용

方花容

1889. 7. 15 ~ 196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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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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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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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9년 7월 1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죽림리(竹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는 방화용(方花用)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에 거주하고 있었던 민영갑(閔泳甲)에 의해 준비되었다. 민영갑은 서울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만세운동의 상황을 파악하고, 같은 마을의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의 계획에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찬성하여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금마면의 독립만세운동이 구체화되었다. 금마면 시위 주도자들은 가산리(佳山里)에 있는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4월 1일 연극이 공연되는 것을 기회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예정대로 연극은 공연되었고, 만세운동의 기회를 보고 있던 주도자들은 밤 8시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공연장에 모인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관중 수십 명이 호응하면서 연극 공연은 곧바로 만세시위로 전환되었으나,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어 귀가하였다. 1919년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사 5명이 붙잡혔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상에서는 참여 시기가 확인되지 않으나 만세 시위에 적극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홍성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즉결 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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