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순
方亨淳1891. 12. 8 ~ 1944. 5.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해주군 청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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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12월 8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청룡면(靑龍面) 영양리(迎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면서, 해주군 청룡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해주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읍내 남본정(南本町)에 위치한 예수교회에서 목사 오현경(吳玄卿)이 주도하여 고종의 봉도식(奉悼式)을 거행한 후 신도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3월 8일 해주면 읍내 만세시위 계획이 알려졌고, 9일에는 석동면(席洞面) 서원리(書阮里), 10일 서변면(西邊面), 12일 추화면(秋花面) 약현리(藥峴里) 청단(靑丹) 장터, 14일 금산면 감수리(甘水里) 만세시위 등으로 이어졌다. 3월 17일 청룡면 만세시위 역시 이러한 해주군 내의 만세운동 상황에 영향을 받았고, 그 연속선상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1919년 3월 17일 이기봉(李起峰)과 함께 거주지인 청룡면 영양리에서 기독교인 3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선두에 태극기를 세우고 행진을 시작하자 마을 주민 150~160명이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마을 곳곳을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읍내 중심지로 나아갔다. 시위대와 함께 청룡면사무소에 이르러서는 면장과 해주군에서 출장을 나온 기수(技手) 정균(鄭均)에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라고 요구하였다. 청룡면 만세시위는 오후 4시 무렵까지 이어졌다. 일제 경찰에 의해서 청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유죄를 받고, 1919년 6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한국이 불법으로 합방된 이후 원통하고 슬퍼한 차에 독립의 기회를 맞이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보안법 위반이 아니다”라면서 상고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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