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묵
方聖默1885. 9. 16 ~ 1995. 5.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개성군 중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1885년 9월 16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중서면(中西面) 곡령리(鵠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면서 4월 1일 중서면 곡령리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허내삼(許迺三)은 전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이에 고무되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4월 1일 밤 8시 주민들에게 일제 경찰의 탄압에 대비하기 위해 몽둥이와 돌, 기와 조각 등을 휴대하고 모이도록 하였다. 허내삼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만세시위를 권유하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중서면의 시위 군중 70여 명은 각자 몽둥이 등을 소지하고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개성 읍내로 행진하였다. 개성군 송도면(松都面) 만월정(滿月町) 만월대(滿月臺) 아래에 모인 후, 다시 개성군 북본정(北本町) 당교(堂橋)까지 행진하였다. 밤 11시 북본정 당교 부근에 당도했을 때, 개성경찰서 순사부장 야마다 마스이치(山田增市)가 순사 4명과 순사보 5명을 이끌고 와서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이에 허내삼을 비롯하여 군중과 함께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막대기를 휘두르고, 돌과 기와 조각을 던지는 등 순사들과 충돌하여 부상을 입혔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중 65일 본형에 산입)되었다. 함께 재판받은 만세운동 참가자들과 함께 “시위를 벌인 것이 조선인으로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의한 것으로 범죄가 아니며, 1심과 2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1월 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지역의 사회운동에 참여하여 1925년~1926년에는 복령소년회(福寧少年會) 총무와 위원을 역임하였다. 1926년 2월 27일에는 복령금주회 위원으로 복령예배당에서 거행된 금주회의 창립 3주년 기념식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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