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성
朴濟成1902. 12. 26 ~ 1970. 8.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음성군 대소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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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902년 12월 26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대소면(大所面) 오류리(五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일어난 음성군 대소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대소면 만세운동은 임경순(林景淳)·임백규(林百奎)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1919년 4월 2일 면사무소 앞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우고, 대소면 내 각 마을의 청년들에게 사전 연락을 취하였다. 이때 연락을 받고 4월 2일 밤 오류리의 송인식(宋寅植)·박병철(朴炳喆) 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오산리(梧山里)에 위치한 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대소면사무소 앞에는 연락을 받고 나온 주민들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이때 주도자 가운데 한 명인 임백규가 ‘조선독립만세’라고 외치는 것을 신호로 다른 주민들과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열창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달려와서 고압적인 자세로 만세시위 중단과 해산을 요구하였다.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만세시위 중단을 요구하는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의 태도는 시위대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였다. 임경순·임백규 등의 지휘에 따라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고 집기와 문서 등을 파기하고 건물의 일부를 파괴하고 불 태우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는 진천헌병수비대(鎭川憲兵守備隊)를 대소면으로 긴급하게 출동시켜 주도자 중 임백규 등 3명을 붙잡고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일제 헌병의 탄압으로 면사무소 앞에서의 만세시위가 해산되자, 송인식·박병철 등 청년들과 함께 해산하는 오류리 주민들을 다시 규합하여 2차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과 수 십 명의 주민들을 이끌고 오류리 뒷산에 올라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는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오류리로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고, 대소면사무소 만세시위 참가와 오류리 뒷산에서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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