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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

朴羲庚

1873. 9. 23 ~ 1966.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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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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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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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청양군 운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73년 9월 2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위라리(位羅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박산희경(朴山羲庚)으로 고쳤다. 1919년 4월 청양군 운곡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청양지역의 만세운동은 4월 5일 정산면(定山面)의 정산시장과 화성면(化城面)에서 시작되었다. 운곡면 만세시위는 그 연속선상에서 전개되었다. 4월 5일 정산면과 화성면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 들은 운곡면 주민들은 4월 6일 밤 9시경부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운곡면 각지의 주민 600여 명이 집결하여 인근 야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큰소리로 외쳤다.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모곡리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하여 진압에 나섰다. 강력한 진압에 시위대는 해산하였으나 다행히도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틀 뒤인 4월 8일에는 운곡면과 인접해 있는 청양군 비봉면(飛鳳面) 신원리(新院里)에서 1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다시 모여 만세시위를 외쳤다. 이들은 오후 10시경 운곡면으로 이동하여 운곡면민과 함께 600여 명이 횃불을 들고 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청양헌병분견소 관할 헌병들이 출동하여 폭력적인 진압에 나서면서 결국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두 차례 운곡면 만세시위가 진행 중일 때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자료의 한계로 구체적인 만세운동 참여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즉결심판에 넘겨져 1919년 4월 28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7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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