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성
朴希聖1901. 3. 12 ~ 1988. 7.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함흥군 함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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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2) 1901년 3월 12일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용원면(龍原面) 원동리(源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함흥 영생학교(永生學校) 3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함흥군(咸興郡) 함흥면(咸興面) 풍양리(豊陽里)에 거주하였다. 3월 3일 함흥군 함흥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경성(京城)을 비롯해서 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 대표들과 학생 대표들은 2월 28일을 전후로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인편을 통해서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배포하고 만세시위 소식을 전달하였다. 같은 해 2월 28일 무렵 함흥군에도 경성에서 민족대표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조선독립선언서 선언 및 만세운동 계획이 알려졌다. 이에 2월 28일 오후 9시 함흥면 중하리(中下里)의 개신교 예배당에서 교인을 비롯하여 학생과 마을 주민 등이 참여하는 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함흥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한영호(韓泳鎬)·이순기(李舜基)·이근재(李根栽)·이영화(李榮華) 등을 준비위원으로 선임하였다. 아울러 3월 3일 함흥면 장날을 이용해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만세운동 전날까지 이근재·한영호·한임(韓林)은 학생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때 이근재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받고, 곽선죽(郭善竹)·김치선(金致善)과 함께 참여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서양리(西陽里) 박세근(朴世根) 집에서 함흥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어서 3월 2일에는 이근재 집에서 조영신(趙永信)이 원산에서 확보한 독립선언서 3,000매를 인쇄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일 정오 무렵 함흥 읍내 대화정(大和町)에서 시작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으며, 그 과정에서 김치선은 독립선언서 50매를 군중들에게 배포하기도 하였다. 함흥면에 위치한 학교의 학생들과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합류하면서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함흥경찰서는 경찰력뿐만 아니라 곤봉을 소지한 군인들과 쇠갈고리로 무장한 소방대를 시위 진압에 투입하였다. 일제 군경과 소방대는 무력으로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시위에 참여한 인사 150여 명을 끌고 갔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함흥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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