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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래

朴鶴來

1889. 6. 29 ~ 1927.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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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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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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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889년 6월 29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리(蒼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면서, 영덕군 창수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영덕지역의 만세운동은 3월 18일 영해면(寧海面) 성내동시장(城內洞市場)에서 시작되었다. 성내동시장 시위에는 2,000여 명의 대규모 군중이 참여하였고,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 등에 들어가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창수면 만세시위는 성내동시장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다음 날인 3월 19일 전개된 것으로 그 연속선상에 있었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만세시위는 이수각(李壽珏)·이현우(李鉉祐) 등이 주도하여 창수경찰관주재소 인근에서 시작되었다. 박성운(朴聖雲)·권재형(權在衡)·이현우 등이 집에 찾아와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자는 요구를 하였고, 이에 호응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2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거리를 행진하였다. 그리고 창수경찰관주재소에 이르러서 군중이 주재소 안으로 진입하여 문서와 비품을 훼손하고 사무실·객사·숙사 등의 건물을 파괴할 때, 문서 파기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이 출동하여 총칼을 휘두르며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고, 시위에 참여한 수십 명이 일제 군경에 끌려갔다. 이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어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공무집행 방해죄, 건조물 손괴죄, 기물 손괴죄,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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