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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옹

朴喆擁

1894. 1. 30 ~ 1937.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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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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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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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94년 1월 3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고천동(高川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유연성(柳淵成)은 편항시장 만세운동을 최초로 계획하였으며, “지금 만세운동을 펼치고 관청을 파괴하여 우리의 힘을 보여준다면 반드시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동지를 규합하였다. 유연성의 설득에 유동수(柳東洙)·유교희(柳敎熙)·이강욱(李康郁) 등이 응하였다. 이들은 임동면을 중심으로 구역을 나누어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이 때 인근 주민들로부터 만세운동 계획 소식을 듣고 동참할 결심을 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아침 일찍 집을 나와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시장에는 장꾼과 주민들로 붐비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오후 2시경 군중 앞으로 걸어 나온 유연성이 시위대를 향해 우리가 왜 만세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유연성의 연설과 사방에서 울리는 만세 소리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호응하면서 만세를 부르고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많은 사람의 참여로 시위대의 사기가 한껏 고무될 무렵 일제 경찰이 급히 출동하였다. 경찰은 무력으로 시위대를 위협하고 참여자 중 한 사람인 배태근(裵太根)을 체포하면서 그의 뺨을 때렸다. 이를 보고 분노하여 군중들과 함께 체포를 제지하였고, 경찰은 그 자리에서 달아나 주재소로 도망하였다. 이후 시위는 장터를 넘어 주재소로 확대되었다. 시위대와 함께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500여 명의 군중이 주재소 앞에 모여 시위를 전개하려고 할 때, 경찰이 권총 한 발을 쏘며 시위대를 위협하자 시위대는 더욱 격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주재소의 출입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벽과 창문 등을 파괴하였다. 주재소 시위를 마친 후 일부 시위대가 해산할 때 함께 귀가하였다. 다음날부터 일제 경찰은 관련자 검거를 시작하여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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