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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화

朴致化

1895 ~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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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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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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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독립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3) 1895년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송천리(松川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2년 당시 37세로,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한자가 다른 박치화(朴致華)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에 가입한 이후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1월 20일 남만주 신빈현(新賓縣) 하북(河北) 서세명(徐世明)의 집에서 국민부(國民府)·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간부회의가 개최되었다. 회의 도중 일제 퉁화영사분관(通化領事分館) 경찰의 급습을 받아 국민부 중앙집행위원 이종건(李鍾乾)·조선혁명군 사령관 김보안(金輔安)·조선혁명군 부사령 장세용(張世湧)·조선혁명군 독립대장 이규성(李奎星)·조선혁명당 집행위원장 이호원(李浩源)·조선혁명군 제2중대장 전운학(田雲鶴) 외 19명이 체포되었다. 이를 ‘신빈사건(新賓事件)’이라고 한다. 이후 2월 중순까지 신빈현·류허현(柳河縣)·퉁화현(通化縣)·하이룽현(海龍縣) 등지에서 항일운동가 80여 명이 붙잡혔다. 조선혁명군 사령부 부관장(副官長)으로 활동하던 중 1932년 2월 8일 신빈현 황토강자(黃土岡子)에서 일제 퉁화영사분관 경찰과 교전 중 제2중대장 김덕명(金德明), 제2중대 부관 홍규성(洪規晟)과 함께 붙잡혔다. 퉁화영사관에서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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