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성
朴春星1906. 4. 28 ~ 1945.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진주노동공제회
- · 조선청년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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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6년 4월 28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 본성동(本城洞)에서 태어났다. 맏형 박춘기(朴春機)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김좌진(金佐鎭) 장군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0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청과 면사무소의 급사로 근무하다가 1923년 7월 진주금융조합 급사로 채용되었다. 평소 “근성이 정직하여 불량 소년배와 섞이지 않는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1924년 6월 형 박춘기의 동지인 장두관(張斗爟)을 만났다. 장두관은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독립운동 중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에 들어왔다. 장두관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박춘기의 소식을 전하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7월 31일 오후 3시 진주금융조합(晋州金融組合)에서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으로 예금하려던 현금 5,700원 등 합계 6천여 원을 가지고 도피하였다. 만주로 탈출하기 위해 진주노동공제회(晋州勞働共濟會) 상무집행위원(常務執行委員) 김영호(金永浩)를 비롯해 강기호(姜機鎬)·장두환(張斗煥) 등과 함께 서울까지 도착하였으나, 8월 3일 경찰에 붙잡혔다. 1924년 8월 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8년 도쿄조선노동조합(東京朝鮮勞動組合) 북부지부에서 지부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일본총국(日本總局) 혼조(本所) 제2야체이카에서 조학제(趙鶴濟)·이학순(李學淳)·이운수(李雲洙)와 함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28년 10월 이른바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1년 3월 31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 150일 통산)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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