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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창

薛鎭昌

1869. 12. 8 ~ 1940.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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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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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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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기우만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69년 12월 8일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금마면(金馬面) 동전리(銅田里)에서 아버지 설상기(薛相基)와 어머니 탐진최씨(耽津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창(淳昌)이며, 초명은 진삼(鎭三), 자는 도홍(道弘), 호는 남파(南坡)·율재(栗齋)이다. 이명으로 설진영(薛鎭永)을 사용하였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고광선(高光善)·박인섭(朴寅燮) 등과 교유하였다. 1895년에 기우만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왜적(倭賊)과 상대할 수 없다며 아미산(峨嵋山) 아래 집을 짓고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1922년 일제가 이른바 조선호적령을 실시하여 호적에 진창(鎭昌)이라 기재하자 왜적이 만든 호적법상에 실린 이름이라며 진영(鎭永)이라고 즉석에서 개명하였다. 1940년 5월 19일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제로 단행한 것에 반대하여 ‘제각 앞의 우물에 몸을 던지다(投身于祭閣前泉)’라고 봉투에 쓴 유서와 절명시 2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유서에는 ‘맹세코 성을 바꾸지 않겠다(誓不革姓)’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고, 절명시 2수는 “천세백세(千世百世)를 이어 내려온 민족 전통이 무너지니 무슨 면목으로 살 수 있겠는가”라고 적혀 있었다. 전북 진안군(鎭安郡) 마령면(馬靈面) 영광사(永光祠)에 순국선열 33위와 함께 제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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