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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麟洙

白洙

1856. 7. 16 ~ 1910.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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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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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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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56년 7월 16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성내면(星內面) 덕산리(德山里) 도덕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자는 사순(泗淳), 호는 갑운(甲雲)이다. 유학자 가문으로 조선 중기 경기도 파주(坡州)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문경공파(文敬公派) 시조인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으로서 대대로 학문이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가풍 속에서 유교적 소양을 익혔으며 1902년 5월 4일 통정대부(通政大夫)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에 올랐다. 그러나 선대의 묘에 어떤 세도가가 그들의 묘를 몰래 매장하여 소송이 벌어지자, 직접 세도가의 묘를 파버렸다. 일명 ‘선묘(先墓) 사건’으로 이 때문에 전북 고창군 흥덕면(興德面)에 3년여 간 유배되었다. 1905년 11월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 파기와 을사오적 처단을 요구하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고, 육군 참장(參將) 백성기(白性基)와 함께 동지를 규합하여 을사늑약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두문불출하다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단식, 자결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1910년 9월 3일 ‘통분분사불충사죄(痛憤憤死不忠謝罪)’, 즉 “국치(國恥)를 당한 불충(不忠)을 죽음으로써 사죄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일부 자료에는 을사늑약을 체결 당하자 칼로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1910년 단식으로 자결하였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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