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경
徐相庚1900. 8. 22 ~ 1962. 12.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흑우회
- · 흑기연맹
- · 문예운동사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3
- · 1만세운동
- · 흑기연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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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00년 8월 22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현 충주시) 신니면(薪尼面) 신청리(新淸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흑영(黑影)·도성(濤聲)을 사용하였다. 청주공립농업학교(淸州公立農業學校) 재학 중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신횡호(申鑅浩)·오석영(吳錫永) 등과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격문 300장을 등사하여 청주농업학교에서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하려다가 3월 19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에 공명(共鳴)하여 박열(朴烈) 등이 1923년 1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조직한 흑우회(黑友會)에 홍진유(洪鎮裕)·정태성(鄭泰成) 등과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흑우회는 1921년 11월 조직된 흑도회(黑濤會)가 김약수(金若水) 등 사회주의 계열이 1923년 1월 북성회(北星會)로 분열해 나가자 순수 무정부주의자들이 조직한 것이었다. 귀국 후 1925년 1월에 충주에서 서천순(徐千淳)·서정기(徐廷夔)·곽윤모(郭胤模) 등 동지들과 회합하고, 서울에서 무정부주의 단체를 조직하여 한국의 현재 정치와 경제 조직을 변혁할 것을 협의하였다. 같은 해 3월 하순 이복원(李復遠)·홍진유·신영우(申榮雨) 등과 회합하여 무정부주의 독립운동 단체의 이름을 흑기연맹(黑旗聯盟)이라 하고 “우리는 자아의 확충을 저해하고 만인의 행복을 유린하고 있는 모든 불합리한 제도를 근본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우리는 강권적 타력(他力)으로써 결합된 조직을 철저히 배척한다. 우리에게는 자주적 자유연합을 한층 견고히 조직하고 이에 우리는 깃발을 선명히 들고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상호 깊은 이해와 친화(親和)와 자각 있는 자아로써 견고히 연맹하여 신사회의 주인이 되자”라는 강령을 작성하고 그 해 5월에 발회식을 거행하려다가 4월 25일 종로경찰서에 붙잡혔다. 1925년 10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한국 최초의 무정부주의자 흑기연맹 사건 공판이 개정되었는데 방청이 금지되었다. 그 해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고 1926년 11월 17일 만기로 풀려났다. 1929년 2월 18일 충주군 충주면(忠州面) 읍내리(邑內里, 현 충주시 성내동 부근) 소재 금성여관(金星旅館)에서 권오순(權五淳)·안동규(安東奎)·김학원(金學元)·정진복(鄭鎭福)·김현국(金顯國)·서정기 등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문예운동사(文藝運動社)라는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잡지 『문예운동(文藝運動)』을 간행하려고 활동하다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에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30일 권오순·김학원·김현국 등 7명과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0년 3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3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그 해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이때 법정에서 1923년 무렵부터 무정부주의를 마음에 지니고 있었고, 그 주의는 “인류는 모두 절대로 자유하고 또 평등을 요구한다는 것과 따라서 현대 국가 제도와 같은 것은 이에 위배되는 고로 모두 이를 파괴하고 무정부주의의 실현에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934년 9월 2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만기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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