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65. 11. 2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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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65년 11월 26일 충남 아산(牙山)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강서면(江西面) 덕흥리(德興里)이다. 어렸을 때 한문을 수학하였다. 1919년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 약칭 대동단)에 가입하여 만세운동과 의친왕(義親王) 망명을 추진하였다. 보부상 출신으로 조선민족대동단 대표인 전협(全協)과는 1907년 부평군수로 있을 때부터 알던 사이다. 그런 관계로 1919년 3월 전협·최익환(崔益煥) 등이 결성한 조선민족대동단에 6월 가입하였다. 당시 대동단은 사회 각층의 인사들을 대상으로 황족(皇族)·진신(縉紳)·유림(儒林)·종교(宗敎)·교육(敎育)·상공(商工)·노동(勞動)·청년(靑年)·군인(軍人)·부인(婦人)·지역구역(地域區域) 등 11개 단으로 조직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우선 단원 규합이 가능한 진신·유림·상공·청년의 4개 단을 중심으로 조직 활동을 전개해 갔다. 진신·유림단은 참판을 지낸 김찬규(金燦奎), 청년단은 휘문의숙 출신의 불교승려 정남용(鄭南用)이 맡았다. 이때 상공단을 담당하게 되었다. 상공단장이 된 후 전국 각도에 36명의 보부상을 파견하기로 하고, 1인당 100원씩 3,600원의 자금을 제공하였다. 아울러 전협이 건네준 540원으로는 예지동(禮智洞)에 집을 마련하고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대동단은 결성 초기부터 각종 선전물을 인쇄·배포하였다. 대동단의 성립을 대외에 천명한 「선언서」와 조직체계를 규정한 「기관」·「임시규칙」 등을 비롯해 파리강화회의와 윌슨 미국대통령 앞으로 각기 작성한 「진정서」, 그리고 민족각성을 촉구하는 「경고문」·「등교학생 제군에게」와 「일본국민에게 고함」 등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선전물 배포와 함께 1919년 5월 조직의 일부가 발각되면서 타격을 입고 경찰 포위망이 좁혀왔다. 이에 8월부터 본부를 상하이(上海)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우고, 10월 10일 총재 김가진(金嘉鎭)의 상하이 망명을 단행하였다. 이어서 의친왕 이강(李堈)의 상하이 망명을 추진하는 한편 대대적 만세운동 계획도 준비해 갔다. 거사일은 일본의 천장절 축일(天長節 祝日)인 10월 31일로 잡았다. 1919년 만세운동이 시작될 때처럼 「독립선언서」와 함께 민족대표 33인을 정하고, 시위 절차와 방법도 만세운동의 방식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름도 ‘제2회 독립만세시위’로 붙여 추진하였다. 이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며, 의친왕의 해외 망명에도 힘을 보탰다. 그런데 의친왕 망명이 지연되면서 만세운동 계획도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해 11월 10일 의친왕 망명이 뒤늦게 결행되었지만, 경찰에 탐지되면서 중국 안둥(安東, 현 丹東)에서 의친왕 일행이 붙잡혔다. 결국 대동단 본부의 상하이 이전과 거창하게 계획한 ‘제2회 독립만세시위’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11월 28일 만세시위가 거행되었지만, 당초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 일로 경찰에 붙잡혀 1920년 6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 사기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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