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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영

方夏永

1911. 2. 17 ~ 1949.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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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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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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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청년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1년 2월 17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금전동(金田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방말개(方末介)라는 이명이 있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남방하영(南方夏永)을 사용하였다. 1932년 4월 동향 출신의 이두석(李斗錫)·정행돈(鄭行敦)·이창기(鄭行敦)·방몽득(朴夢得) 등이 협력하여 칠곡군 왜관면(倭館面)에서 청년동지회(靑年同志會)를 결성하자, 이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청년동지회는 농촌계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전반기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청년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결성되었다. 이들은 야학(夜學)을 경영하며 농민·노동자·여성 등 소외되었던 민중의 교육을 위해 힘썼다. 특히 일제의 한글 탄압 정책에 반발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 외에도 농촌 계몽과 소비조합 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박형동(朴亨東)·윤억병(尹億炳)·이석(李錫) 등 7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독서회는 ‘조선어학’·’조선역사’·’조선문학’·’일반사회 사상학’ 등을 강론하며 회원들과 발표·토론 활동에 주력하였다. 이 일로 1938년 10월에 붙잡혔고, 1941년 3월 7일 예심을 거쳐,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판결 이후 미결구류일수가 산입됨에 따라 풀려났다. 하지만 투옥 당시 받았던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9년 4월 1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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